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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하면서 만난 사람들
브런치 자유여행자님의 글
삶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던 시절 무작정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다. 나에게 집중되는 모든 짐들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보여줄 것 같았다.
방학이라 밤마다 집에 조용히 앉아 있던 어느 날, 베란다 바깥에서 바다가 보이는 것 같아서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밤 11시에 해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한 남자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길래 달려들어가 붙잡았다. 단지 바닷물에 떠내려간 맥주를 주우러 간 것 뿐이었던 그 형과 나는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대화를 섞기 시작했다.
소방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고 전역한 후에 부대 후임들을 찾아왔다가 바다가 보고 싶어서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 형과 나는 밤새도록 술잔을 들이키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어느 도시에서는 발랄한 여자애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이렇게 이쁜 풍경들을 프레임에 담으며 자기네들의 즐거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삶의 행복이라고 믿는 듯 했다.
벽화가 유명했던 그 마을은 참으로 이뻐 그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골목 사이사이를 다니며 각종 포즈를 잡고 깔깔대던 우리는 하루종일 플래쉬를 터뜨리다 헤어졌다.
한적한 시골에서 만난 남자는 나를 보자 반가워서 주변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곳은 산책로가 발달한 곳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개천가 길이 너무도 평화로워서 인상 깊었다.
그 남자는 주변의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다. 한 때 바이어로 일하다가 복잡한 도시가 싫어 이곳에 내려왔다고 한다. 근처의 여행지를 소개해 주기도 하고 숙박 할 곳을 알아봐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더 어리다고 동생같이 챙겨주려고 한 그 사람은 자기는 사랑하는 여자랑 함께 느릿느릿 여유로이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수의 어느 다리에서는 나처럼 여행 다니는 누나를 만났었다. 함께 야경도 보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친해졌다. 같이 간장게장을 먹기도 하고 부산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다.
헤어지기 전 날 어느 술집에서 자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이런 경험이 좋다며 곧 간호사로 일하던 것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일하면서 준비해 두었다며 행복해 했다.
산에 올라가서 만난 두 명의 여자도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혼자 등산하고 있는 내가 신경 쓰였는지 가지고 있던 물을 건네주기도 하고 과일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우리는 정상에 올라 소리를 지르고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모든 것이 작게 보이고 바람은 너무도 시원하게 불어와 올라가면서 느꼈던 답답함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듯 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한 여자가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이렇게 말했다. 위에서 보니까 너무도 시원한데 왜 그리 삶은 더운 사우나 같은지 모르겠다고.
눈이 끝없이 뒤덮인 양떼목장에서는 나랑 비슷한 대학생 남자애들을 만났었다. 그들과 설산을 뛰어보기도 하고 양들의 먹이를 줘보기도 하다가 흰 색 밖에 없는 그 세상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아무도 걷지 않은 바닥과 다른 색깔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하늘 때문에 위아래 없이 통합된 하나의 공간 같았다. 왠지 다시 뛰고 싶어져 막 뛰어다니는데 한 사진작가 아저씨가 우리가 웃고 있는 작품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렇게 뛰다 지쳐 푹신한 눈 위에 털썩 셋이 누워버렸는데 한 친구가 이 곳에 꼭 다시 와보고 싶다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잊지 못할 풍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새벽이라 와락 그 사람들이 그리워져서 사진을 찾아보다가 내가 떠나서 얻은 무언가는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모든 것을 놓고 싶어서 떠났는데 늘 손가락 끝에 손잡이 몇 개 정도는 걸쳐 놨으리라.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라서 내려놓을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와 마찬가지로 일상으로 돌아간 저 친구들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매우 궁금해졌다. 대부분 몇 년이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연락을 안한지 오래된 친구들이었는데 이 기회에 다시금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바닷아 위에서 만났던 형은 현재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도시에서 만난 발랄한 여자애들 중 하나는 부산에서 작품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적한 시골에서 만난 그 남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당시 가지고 있던 연락처는 이미 이름 모를 어느 아주머니가 주인이 된지 오래고, 저장했던 이메일 주소도 휴면 계정으로 나타났다.
여수에서 만났던 간호사 누나는 현재 다른 병원에 취직한 상태였고 나와 헤어진 이후 무려 7개국을 여행하고 왔다. 함께 부산을 여행하던 중 만났던 형과도 연락이 닿아 셋이서 오랜만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양떼목장에서 만난 한 친구는 최근에 의경을 전역하고 테니스 강사일을 하고 있다. 나머지 친구도 태권도 전공을 살려 도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모처럼 되돌아본 과거의 조각들이 되살아나는 듯 해 신기한 하루였다. 여행 속에서의 나는 참으로 홀가분한 기분으로 자유로웠구나. 하고 느끼며 현재가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쌓이고 쌓여 나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스무살의 나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었따.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가 곧 현실 속에서의 나를 옭아매는 모든 감정들로부터 벗아나게 해주기 때문에 궁긍적인 행복을 물러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나 보다.
그런 마음으로 떠났던 길목에선 늘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너무도 다양하고 재밌어서 잠시 취했다가 돌아오는 길목은 항상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자유롭기 위해서 떠났던 여행 속에서 나를 취하게 했던 그 이야기 속의 세상엔 항상 정착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게서도 궁극적인 떠남은 없었다.
내가 취했던 것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였던 것일까 아니면 자유를 통해서 소중함을 알게 된 현실이었던 것일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의 본질이라는 믿음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나는 돌면서 만난 저들의 이야기에서 정확히 무엇을 건져야 할지는 모르겠다. 함께 바라보던 그 파도와 계곡, 바람과 기차 속에서 어떤 지도를 찾아 아직 페달이 돌아가지 않고 있는 내 인생의 경로를 정해야 하는지 여전히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자유와 행복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유적지에도 도착하고 시원한 바다에도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