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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사람에게 충격받은 경상도 토박이
브런치 Hyemi Lee님의 글
내 DNA 속에는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경상도인의 피가 아주 짙게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아빠, 할머니만 봐도 몹시 급한데, 나는 어른들 박자에 맞게 "야야, 니 거 가서 거거 좀 해라" 하면 딱 알아듣고 착착 하였다.
일 할 때도 파바바박 할 거 하고 버릴 거 버리고, 글 쓸 때도 타다다닥 쓸 거 쓰고 못 쓸 거 버리고.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나는 기왕 살 거면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최대한 특기를 장점으로 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와 손발 맞춰 오래 일하는 사람들도 다 손발이 빠르다. 사람이 끼리끼리 모이게 된다고, 결국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일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 내가 충청북도에 이사를 왔다. 그전에 나는 나의 이 급한 성격이 지리적 요인이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성향 자체가 좀 급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렇게 조그만 우리나라에 교통이 발달 돼도 진작 발달되었고 전 국민이 하나 되어 섞인 지가 언젠데, 무슨 지역적인 특징이 유벌나게 있을까 싶었다.
이사 간 직후, 처음으로 음성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터미널이 아닌 간이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 시간이 되었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앉았다 섰다 반복하며 혼자 화닥 화닥 거리고 있었다. 기차는 물론이고, 시내버스마저도 도착 시간을 칼같이 지켜, 내가 5초만 늦어도 매정하게 떠나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집에 가는 시외버스가 5분이 넘도록 오지 않은 것이다.
앉아있던 고등학생이 말한다. "오늘 버스가 좀 늦네", "퇴근 시간엔 원래 좀 늦제" 그녀들의 눈에는 나만 이상한 사람이었을까? 8분 정도 지난 후 다행이 버스가 와 주었다. 그런데 이것이 한 번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네의 시외버스는 더 골 때린다. 우리 동네는 고속버스는 당연히 없고 시외버스만 다니는데, 인터넷으로 예매를 할 수가 없고 오로지 현장발권만 하게 되어있다.
그마저도 가끔 버스 시간이 예고없이 없어질 때가 있는데, 새벽 6시 차를 예매했다가 차가 없어져서 6시 30분에 출발한 적이 있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30분 늦게 출발한다고 하자 다들 기사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그러냐며 보던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나만 혼자 벙찐 것이다.
"그럼 티켓을 6:30 걸로 바꿔야 하나요?", "아녀, 그냥 타면 돼유~" 그래. 서울까지 나갈 수 있는 게 어디냐. 하루 더 참아본다.
세탁소에 맡겨 놓은 내 옷은 일이 있어 일찍 문 닫은 세탁소 할머니 때문에 제때 찾지 못했다. 다음 날 급하게 입어야 하는 건데 못 입었다고 웃으며 이야기 했더니 세탁소 할머니는 나를 타박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그~ 그럼 진작 맡기지 그랬어."
처음 충청도 여행을 했을 적 나를 웃게 했던 경찰서의 속도제한 현수막이 생간난다.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이런 사람들의 여유 있는 태도에 가장 득을 본 것은 운전할 때이다. 그렇게 성질이 급한 나도 운전을 할 때만은 느림보가 되는데, 어쩐지 운전 경력 10년이 되어도 여전히 운전은 너무 무섭다.
그래서 운전할 때도 슬렁슬렁 천천히 가는 사람들이 놀랍지만 편하고 좋다. 처음엔 땅이 넓고 공간이 많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상한 것을 느꼈다. 자동차 경적소리가 단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도시였으면 빵빵거리고 난리가 났을 상황에도 사람들은 조용했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앞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상식적으로 빵, 하고 한 번쯤은 일깨줘야 하지 않나? 경적을 울리는 사람은 서너 번째 줄에 서 있던 나뿐이었다.
사람들이 경상도에 가면 놀란다고 한다. 퉁명스러운 식당 아주머니, 화가 난 듯한 버스 기사님.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그걸 봐 온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진짜 화가 난 게 아니라 그것이 성향이니까. 되려 그런 분들이 훨씬 더 정이 많은 경우도 많다.
충청도에 와서는 식당을 가거나 편의점에 가서 단 한 번도 그런 까칠함을 느껴 보거나, 기분이 나빠 본 경험이 없다. 그것은 이곳에서 받은 또 하나의 충격적이었다.
3년 정도 살았으면 주변에 미운사람 정도 하나 생길 수도 있는데 이곳 사람들의 푸근함에는 지금도 혀를 내두른다. 충북 사람들이 양반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가 보다.
충북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이 충북의 힘이라고. 똑같은 세상에 똑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굳이 급하게, 사납게, 기분 나쁘게 할 필요가 있냐고.
어쩌면 힐링이나 명상을 하려면 다들 충북으로 한 번씩 와서 몇 달쯤 살아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나는 도시에 나가면 끼어드는 차에게 무조건 양보를 해주고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나도 그러려니 이해한다.
사람들이 시골 사는 게 뭐가 좋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업삳. 여유로워서? 공기가 좋아서? 다 아니다. 그것만으로 살 수 없는 시골의 무언가가 있다. 이런 사람들의 분이기와 삶의 리듬 때문인지, 당분간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