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최근에 영화 <듄: 파트 2>를 보고 왔다. 재작년에 개봉한 파트 1 이후로 듄 세계관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정말 많이 기다렸는데 정말 정말 정말 재미있었다. 최근에 이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정말 정말 재미있었다.

듄을 보면서 운명이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듄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 폴 아트레이더스는 퀴사츠 헤더락이 될 운명의 인물인 것으로 묘사된다. 꿈 속에서 미래에 벌어질 것으로 보이는 일들을 보고 점점 그 미래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영화 <듄>은 프랭크 허버트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에서 캐릭터들은 작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상황, 장면, 캐릭터들은 작가의 의도대로 배치되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걸 생각하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떠한 캐릭터나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소설의 핵심을 이끄는 하나의 주제에 따라 주인공은 행동한다. 주제를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서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행동 또는 활동들을 설명한다. 주변 인물 또한 주인공을 더욱 잘 묘사하기 위해 활용된다. 가족, 친구, 연인, 또는 단골 가게의 사장님까지도 주인공을 보여주는 하나의 인물로 표현된다.

작가가 정한 스토리에 따라, 주인공은 행동해야 한다. 주인공 혼자서 행동하고 생각할 수 없다. 작가가 어떠한 문장을 적지 않는다면 주인공은 특정 행동을 할 수 없다. 작가는 신처럼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고 말하게 한다.

하지만, 작가가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해도 캐릭터에 대한 모든 부분을 알지 못한다. 작가 또한 주인공이 이런 상황엔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한다. 개연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행동하는 수많은 캐릭터들. 주연과 조연들. 이러한 소설의 세계를 현실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만약 어떠한 거대한 의미의 존재가 있다면 이 세계 속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시뮬레이션 우주론처럼 만약 이 삶이 하나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면? 이 세상이 심즈 속 하나의 데이터라면?

예전에 영화 <프리가이>를 본 적이 있다. <프리가이>는 어떠한 게임 속 NPC가 자신이 NPC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나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게임 속 NPC와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살면서 대화 한 번도 하지 않을 사람들이 정말 많다.

산책을 하며 지나치는 사람들, SNS 속에서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내가 주인공인 삶 속에서 이 사람들은 하나의 NPC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만약 이 세상에 단 한 명의 주인공이 정해져 있다면? 사실 나도 하나의 NPC에 지나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분명 처음 운명이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정했을 때 이런 내용을 적으려고 하진 않았는데 <프리가이>가 떠오르면서 방향이 바뀌어 버렸다… 두 내용이 합쳐지고 있는 느낌. 다시 원래 하고 싶었던 내용으로 돌아가야지.

만약 우리의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면, 근데 우리는 그걸 알 수 없다면 삶은 어떻게 진행될까?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언젠간 내 운명대로 삶이 진행될까? 이 세상 어딘가엔 이런 삶을 실현하고 있을까? 그러면 그것도 그 사람의 운명인걸까?

되게 시덥잖은 이야기같지만 나는 너무 흥미진진하다. 나는 운명을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다. 운명처럼 알아서 모든게 착착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반은 믿고 모든 건 운명이 아니라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 반은 믿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되었던 경험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우연들이 쌓이면서 또 새로운 우연을 만들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우연들을 접하게 되지 않을까. 그 안에서 미세한 방향이 보이고 그 방향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먼 훗날 ‘이게 내 운명이구나’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세상에 많은 일들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걸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사실은 그저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쳐 지금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재밌다. 좋은 일이 생겨도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이게 정말 좋고 나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나은 것이라는 건 알겠다.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다면 ‘나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지?’보다는 ‘앞으로는 안 헛디디게 조심해야지’라는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 그나마 낫다. 조심해도 또 헛디딜 수도 있다. 길을 가다가 새똥을 맞으면….. 어떻게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이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