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

돈 낭비,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재능 낭비 등등등. 세상엔 수많은 낭비들이 있다. 낭비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시간이나 재물 따위를 헛되이 헤프게 씀.’이라고 한다. 헛되이? 그럼 헛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검색해 보니 ‘아무 보람이나 실속이 없다.’라고 한다. 앞에 적혀 있는 낭비들이 보람이 없진 않은데…

뭐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뜯어보면서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왜 낭비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할까 생각하다 보니 단어의 의미까지 곱씹어 보게 된다.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쓰는 데에 정말 아무 보람이 없었을까.

무언가를 하다 보면 ‘지금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취직하려고 자격증도 따고 대외활동도 한다는데… 남들은 집 사려고 투자도 하고 적금도 꼬박꼬박 한다던데… 남들은 원 데이 클래스도 하고 운동도 한다던데…. 나는 지금 이걸 하고 있어도 되는 건지 고민하게 된다.

낭비라는 단어엔 어떤 기준이 있는 걸까. 예를 들어 한 달에 2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일정 금액을 자신의 취미 활동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건 낭비인 걸까? 나이를 적당히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취직을 하지 못한 상태로 하루에 세 시간씩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면 그건 시간 낭비인 걸까?

요즘에 너무 많은 제품들, 콘텐츠들, 서비스들이 있다 보니 무엇 하나를 고를 때도 명확하게 고르기 어렵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해도 더 나은 것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린다. 비슷한 제품 중에 더 저렴한 것이 있지 않을지 계속 계속 스크롤을 내린다.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면 다행. 최선의 것을 고르겠다는 마음이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의 고민을 줄여주기 위해서 많은 서비스들이 내가 만족할 것들을 추천해 주지만 그것만 보고 고르지 않는다.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편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시간도, 에너지도 모두 돈으로 환산된다. 우리의 돈과 에너지는 시급으로 환산되어 매달 통장에 찍힌다. 더 좋은 제품을 고르는 데에 사용하는 시간과 에너지도 결국 돈으로 환산될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자본주의에 찌든 생각인가 싶기도 하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잘 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더 좋은 제품을 고르겠다는 게 아니라 내 취향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긴 하다. 생각해 보면 그럴싸하게 포장한 말일뿐인데…. 나도 참 간사하다. 그럴듯한 말을 붙이면 납득을 하네.

예전에 친구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군대를 전역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한테 충분히 방황해 보라는 말을 해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뭔 생각으로 그랬나 싶다. 나도 걔랑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황이었는데 분위기에 취해서 그랬나…. 늦은 시간이긴 했는데….

한창 그때 읽었던 글이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충분히 방황하고 고민하고 다양하게 경험해 보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나도 그렇게 했고 친구도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나 보다. 그때 한창 산책도 많이 하고 글도 읽고 쓰고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친구는 취직을 하고 자기의 커리어를 쌓고 있다. 내 말이 도움이 됐는지 되지 않았는진 잘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때 했던 경험들이 <오후 10시>로 이어졌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내용을 누군가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작했다.

사실 뉴스레터를 운영하면서도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주 고민했다.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고민할 때가 종종 있다. 취직에 대한 관점으로 봤을 때 더욱 그랬다. 나에겐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것 자체가 큰 만족인데 기업의 입장에선 <오후 10시>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 내 뉴스레터의 규모는 정말 작지만 과정 속에서 얻은 것들이 정말 많다. 조금이나마 삶의 방향성을 고민해 보게 되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재미를 붙이게 된다. 한 번씩 구독자님들에게 메일이나 DM을 받을 땐 내 이야기가 어딘가에 닿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짜릿하기도 하다.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내가 좋다면 그건 낭비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보잘것없게 느껴진다면 또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내가 그 일을 꼭 해야 하나 한 번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만의 이유가 있다면 하고 아니면 말면 된다.

내가 좋으면 하고 싫으면 말아야 한다. 내가 좋으면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계속한다. 한두 번 하고 말 거라면 굳이 해야 될까. 꾸준해야 나도 기억하고 사람들도 기억한다. 수많은 콘텐츠를 보고 접하지만 꾸준하지 않은 건 결국 잊혀진다. 나라도 기억하려면 꾸준히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